축산업/정육상식

돼지와 돼지고기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10편 1970년대 국내상황-3)

오늘도힘차게 2019. 12. 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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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돼지고기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10편 1970년대 국내상황-3)

 

대일수출의 호조세로 국내 돼지의 공급량 부족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여 소고기와의 가격격차가 해소되자 소고기를 선호하는 식문화는 다시 부활하여 돼지고기의 수요량은 감소하는 듯 하였으나, 1976년 소고기 파동이 발생하면서 품귀현상을 빚은 소고기를 돼지고기가 다시 대체하게 되어 국내 돼지고기 수요량은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소고기파동의 해결방안에 대한 긴급공개좌담회

 

하지만, 국내 돼지고기 시장의 안정을 위하여 정부가 대일수출을 중단한 사이 일본이 돼지고기 수입의 주 거래국을 한국에서 대만으로 변경하여 대일수출이 부진하게 되자 국내 돼지고기의 공급량이 증가하여 돼지고기 가격은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1977년 기업양돈가를 대상으로 생산량 조절을 위하여 양돈가등록제의 시행을 검토하기도 하고, 양돈농가와 소비자들은 돼지의 사육부터 판매과정을 체계적으로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돼지고기협의회를 발족시켜 돼지고기의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도록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구입할 때 살코기와 비계를 따로 구입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1977년 2월 2일 동아일보

 

그러던 중 서울시내에서 소비되는 돼지고기의 40%에 해당하는 양을 지방에서 밀도살하여  비위생적으로 반입한 밀도살조직이 경찰에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1977년 1월 31일 동아일보

 

이들은 수의사, 도축업자, 반출업자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으로서, 도축검사증, 축산물반출통보서 등을 위조하여 밀도살한 돼지고기를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서울에 반입한 뒤 시중에 유통시켜 각종 세금 등의 포탈로 경찰의 장기간 수사 끝에 덜미를 잡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서울의 돼지고기 반입량이 감소하게 되어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기도 하였습니다. 

 

1977년 2월 5일 경향신문

 

하지만, 소고기 파동 이후 품귀현상을 빚은 소고기를 돼지고기가 대체하면서 조리방법의 개선과 돼지고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게 되어 국내 돼지고기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가격 또한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연도별 돼지고기 소매가격 추이

 

국내 돼지고기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자 정부는 기준가격탄력제 등의 가격제도와 그애 대한 행정지도를 통하여 이를 단속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영업정지 또는 영업취소 등의 행정처분은 돼지고기의 공급량을 더욱 감소시키게 되었고, 정부의 수급예측까지 빗나가게 되자 순식간에 국내 돼지고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이내 돼지고기도 품귀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육류품귀현상으로 고기가 없는 정육점의 모습

 

이에 일부 지역에서는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하였던 수출용 양고기를 돼지고기 대신 먹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었습니다.

 

1978년 1월 12일 경향신문

 

결국 정부는 국내 돼지고기의 공급량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대만산 돼지고기 1,000톤, 미국산 돼지고기 3,000톤을 수입하기로 결정하였고, 1978년 7월 대만산 돼지고기 300톤이 부산항에 입하(入荷)하게 되었습니다.

 

1978년 7월 24일 매일경제

 

이에 수출을 하던 돼지고기를 수입하게 된 처지에 대하여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정부는 수입 돼지고기를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서울, 부산 등의 대도시 위주로 방출하였고, 수입 돼지고기를 방출한 이후 국내 돼지고기가격은 차차 하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8년 8월 7일 경향신문

 

하지만, 이는 수입 돼지고기 방출에 의한 공급량 증가로 하락하였다기 보다 정부의 돼지고기 수입방침에 대하여 양돈농가가 항의성으로 돼지를 방매하여 돼지고기가 과잉공급된 것이 더 큰 원인이었으므로 정부는 추가적인 가격하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1979년 수입돼지고기의 방출과 수입을 서둘러 중단하였습니다.

 

1979년 2월 24일 경향신문

 

또한, 대일수출을 재개하여 국내 돼지고기 공급과잉문제를 해소하려고 하였으나, 마침 일본도 자국내 돼지고기의 공급과잉현상으로 한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중단하였고, 제2차 석유파동의 발생으로 인한 소비절약 등의 다양한 요인이 결부되어 국내 생돈가격이 폭락하는 돼지파동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팔리지 않는 생돈이 계류되고 있는 모습

 

당시 돼지파동은 양돈업자들이 돼지를 키울수록 손해라며 새끼돼지를 생매장(生埋葬)하거나 야산(野山)에 방사(放飼)하는 현상 등이 발생할 정도로 매우 심각하였고, 정부는 생돈의 수매 및 비축, 자가도축의 허용, 암퇘지 위주의 도축 등의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였으나, 돼지파동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1979년 12월 22일 매일경제

 

게다가 11월에는 방출을 중단하였던 수입돈육의 보관기한이 다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이를 다시 방출하게 되어 돼지파동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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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부는 돼지고기의 추가하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번식용 암퇘지 도축을 의무화하고, 서울시에서는 돼지고기의 소비촉진을 위하여 비계없는 돼지고기 판매를 의무화하였으며, 농가의 자가소비목적의 자가도살령을 확대하여 적극적으로 돼지고기가 소비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책을 펼쳤으나,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아 한동안 양돈가는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1979년 11월 14일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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