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정육상식

돼지와 돼지고기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9편 1960년대 국외상황-2)

오늘도힘차게 2019. 12. 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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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돼지고기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9편 1960년대 국외상황-2)



홍콩으로의 수출과 관련하여 당시 국내에는 홍콩으로 돼지를 수출하였던 경험이 있었던 기업과 새로 진입하려는 기업 등의 다양한 수출창구가 존재하였으나, 정부는 이를 고려하거나 이들의 요구조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기업간에 시장선점을 위한 쟁탈전이 발생하게 되었고, 수출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에 수출독점권을 요구하거나 기업이 개별적으로 국제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덤핑주문을 받으려 시도하는 등의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 11월 6일 경향신문


이에 정부는 한국축산물수출조합을 설립하도록 하여 1963년 8월 수출창구를 일원화하였으나, 한국축산물수출조합이 직접 일본으로 냉동육을 수출하려고 하자 1963년 9월 홍콩수출실적이 있었던 기업측이 이에 대한 부당성을 일본 농림부에 직접 진정을 넣게 되었고, 정부는 진정사건을 계기로 수출실적이 있는 기업에 의하여 수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한국축산물수출조합과 수출실적이 있는 기업간의 대립은 지속되었으므로 수출은 차일피일 지연되었습니다.


그러던 사이, 1963년 10월 부산 지역에서 돼지 콜레라가 발생하였고, 마침 부산항에는 수출을 위하여 6000여마리의 돼지가 대기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1963년 9월 13일 동아일보


부산에서의 돼지 콜레라 발생 소식에 일본은 한국산 돈육의 금수조치를 시행하고, 미국산 돈육을 긴급수입하게 되어 한국의 대일수출은 잠정 연기되었습니다.


1963년 10월 1일 동아일보


하지만, 다행히도 1963년 11월 세계보건기구(WHO)의 한국의 콜레라가 퇴치되었다는 보고에 따라 정부는 일본에 수입재개를 요청하였고, 생돈수출이 다시 구체화되어 1964년 3월 생돈 5,000두의 수출계약을 체결하였고, 생돈을 수출하기 시작하여 1964년 한해에 17만 7천불의 수출실적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이후 수출실적이 점차 저조하게 되어 한국축산물수출조합은 해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968년 1월 18일 매일경제


이후 정부는 생돈수출방식이 국제시세와 국내시세간의 격차를 유발시키므로 1968년 7월 일본에 생돈(生豚)으로 수출하던 돼지수출방식을 변경하여 지육(脂肉)으로 수출하도록 하고, 120톤 약 2,400마리 상당의 돼지지육을 다시 수출하려고 하였으나, 일본의 수입 쿼터제(Import Quota System)로 인하여 수출하지 못하게 되자 수입 쿼터제의 철폐를 요구하는 등 수출을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1968년 7월 12일 경향신문


이에 일본은 돼지를 지육이 아닌 부분육(部分肉) 위주로 수출할 것으로 요구하였고, 수출업체들은 1969년 6월 수출증대와 창구일원화를 위하여 돈육수출협의회를 구성한 후 생돈과 냉동돈지육, 냉동부분육 등의 품목을 일본으로 수출하여 상반기에 당초 수출목표로 세웠던 20만불을 상회한 23만불을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 6월 24일 매일경제


이에 정부는 연간 수출목표액을 120만불로 상향하고 수출을 독려하였으나, 이내 국내 돈육가가 인상되어 수출은 다시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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