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정육상식

애저찜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오늘도힘차게 2019. 11. 1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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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저찜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조선시대 일반 백성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농민들은 주로 소작농으로서, 이것저것 세금을 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어 가난하게 생활하였고, 자급이 가능한 자영농은 소수에 불과하였습니다.


김홍도(金弘道)의 벼타작


따라서, 당시 매우 비싼 식재료에 속하였던 돼지고기는 접할 기회가 흔치 않다보니 돼지의 부속물이나 뼈, 내장 등 돼지고기보다 저렴하거나 적은 양으로도 많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부위 또는 지배계층이 선호하지 않았던 부위 위주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김홍도(金弘道)의 주막


그 중의 하나가 애저찜인데요.


애저는 한자로 아저(兒猪)로서 어린 새끼 돼지를 의미하나, 음식이름에 兒(아이 아) 자가 붙는 것은 혐오스럽기도 하였고, 돼지 새끼를 먹는 것이 슬프다 하여 슬플 애(哀)자를 붙여 애저(哀猪)라고 합니다.



따라서, 애저찜은 어린 새끼 돼지찜을 뜻하는 음식인데요.



조선시대에 키워졌던 재래돼지는 임신기간이 약 113일 정도였으며, 한번에 약 6~8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 성돈(成豚)이 되면 다행이었지만, 당시 사육기술이나 지식의 부족 등에 의하여 간혹 어미돼지의 뱃속에서 죽은 채로 태어나거나 태어난 직후 다양한 요인으로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은 새끼 돼지들은 고기 한점 먹기 힘들었던 민초(民草)들에겐 보양식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버리지 않고 요리를 하게 되면서 애저찜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마을은 무병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당산제(堂山祭)를 지냈으며, 당산제(堂山祭)의 제물(祭物) 물목기(物目記)에는 가장 먼저 새끼 돼지(兒猪) 한 마리를 기록하고 있으며, 당산제가 끝나고 나면 새끼 돼지를 땅에 묻어 바쳤는데 이를 다시 파내어 찜 형태의 요리를 하게 되면서 애저찜이 생겨났다고 하여 이를 근거로 애저찜의 시초가 전북 진안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강정리 원강정 당산제 앞 당선


하지만, 애저찜을 전북 진안에서만 먹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전라도 광주에서도 조선시대부터 애저찜을 먹었습니다.


광주 애저찜


이렇게 조선시대 중엽부터 가난한 민초들은 버릴 수 없어서 먹게 된 애저찜이 조선후기 보양식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의 토반(土班)들을 비롯한 양반들도 애저찜을 찾게 되었고, 궁중연회의 특별식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유한 일부 지배계층은 죽은 새끼 돼지로 만든 애저찜보다는 어미돼지 뱃속에 있는 새끼 돼지로 만든 애저찜을 찾게 되었고, 애저찜을 만들기 위하여 어미돼지가 같이 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진안 애저찜


조선시대 조금 슬픈 역사를 지니고 만들어진 애저찜은 전라북도 진안군과 전라도 광주의 토속음식으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나, 애저찜은 새끼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사용하였으므로 여러 명이 먹어야 할 정도의 분량이고, 애저찜의 독특한 외형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며, 요리시간이 긴 단점이 있어 크게 대중화되지는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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