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정육상식

돼지와 돼지고기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5편 근세시대-2)

오늘도힘차게 2019. 11. 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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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돼지고기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5편 근세시대-2)



조선시대 돼지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은 돼지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한 몫했습니다.


돼지와 마찬가지로 소도 제사(祭祀) 또는 사신접대(使臣接待) 등의 용도로 활용되었으나, 농우(農牛)로서의 효용가치가 컸으므로 도사(屠肆)라고도 불렸던 현방(懸房)을 설치하여 별도로 취급하였으나, 돼지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돼지의 도축 및 돼지고기 판매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있거나 단속은 이루어지지 않아 자가도살 등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며, 돼지고기를 판매하였던 푸줏간 등은 별도의 냉장시설없이 살코기와 뼈, 내장 등을 그대로 노출한 채 판매하여 변질의 위험성이 항상 상존하였고, 피와 오물이 주변을 오염시켜 위생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돼지에게 잔반(殘飯)이나 인분(人糞)을 먹여 사육하거나 인분이 함유된 오수(汚水)를 먹어 기생충에 감염된 돼지를 설익혀 먹었다가 종종 탈이 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돼지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돼지의 생활습성과 생태를 이해하지 못한 편견으로 인하여 다양한 속설(俗說)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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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조선시대의 실학자 박제가(朴齊家)가 기술한 북학의(北學議)에서는 "중국 사람은 돼지고기나 양고기를 먹고 건강하며 소 도살이 금지돼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돼지고기나 양고기는 병이 날까봐 염려스럽다고 하면서 기피하고 쇠고기만 먹는다“라고 당시 돼지고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하여 기술하기도 하였습니다.


북학의(北學議)


그에 반하여 1610년 허준(許浚)이 지은 의서(醫書)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돈육(豚肉)이 성질이 차고(寒), 열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고 열로 대변이 막힌 데와 혈맥이 약해 힘줄과 뼈가 약한 것을 치료한다"라고 하였으며, 중국 청나라 장로(張璐)의 편찬으로 1695년에 간행된 약물학서인 본경봉원(本經逢原)에는 "돈육(豚肉)이 신장의 기운을 보강하고, 위의 기운을 충족시키며, 간의 음기를 돋구고 근육을 촉촉하게 하며, 대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입이 마른 증상을 멎게 하며, 몸이 마른 경우에는 살을 찌게 한다"라고 하여 돼지고기의 효능에 대하여 기록된 문서들도 있었습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본경봉원(本經逢原)


또한, 조선시대 편찬된 한국 최고의 식이요법서(食餌療法書)인 식료찬요(食療纂要)에는 돼지내장탕, 삶은 돼지 간과 혀, 돼지 간 초절임, 돼지머리수육과 편육, 돼지 간 된장국, 돼지 간 구이, 돼지콩팥죽, 돼지심장탕, 돼지족발죽 등의 다양한 돼지부위로 만드는 요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규합총서(閨閤叢書), 시의전서(是議全書), 농정회요(農政會要), 소문사설(謏聞事說) 등에는 돼지고기찜, 돼지새끼집찜, 아저찜, 숙육, 제육조림, 돼지순대, 돼지 위 절임, 돼지껍질 묵, 돼지곱창볶음 등의 돼지고기 요리가 기록되어 있어 소고기 만큼은 아니지만 조선시대에서도 돼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하여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식료찬요(食療纂要)


하지만, 돼지고기를 다양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양반 등의 일부 지배계층에 한정되었고, 정작 돼지를 사육하였던 민초들은 돼지의 주인이 아니거나 주인이였다고 하여도 그 돼지를 먹을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 못했으므로 돼지고기를 접하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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