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정육상식

대구 돼지국밥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오늘도힘차게 2019. 11. 1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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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돼지국밥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조선의 건국 이래 대구(大邱)는 농업의 주요 생산지로, 또 영남 내륙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조 12년(1466)에는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어 군사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이 높아지게 되었고, 선조 34년(1601)에는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설치되어 영남지역의 행정·교통·군사를 통할하는 명실상부한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대구 경상감영지(大邱 慶尙監營址) 경상감영 공해도(慶尙監營 公廨圖)


따라서,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대구읍성(大邱邑城)을 축조하여 성곽도시화시켰으나, 일제강점기였던 1904년 대구역이 완공되면서 대구읍성 외곽에 터전을 잡고 있던 일본상인들이 대구 중심부로 상권을 확장하기 위하여 대구읍성의 철거를 요구하였고, 관찰사 서리로 있었던 친일파 박중양(朴重陽)이 조정의 승낙도 없이 이를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박중양(朴重陽)


이후 1907년 4월 대구읍성의 성벽이 완전히 철거되었고, 철거된 성벽을 따라 동성로(東城路)·서성로(西城路)·남성로(南城路)·북성로(北城路) 총 4개의 간선도로가 개설되었습니다.


대구부 본정통(本町通·현 대구시 중구 서성로)


당시 서성로 인근에는 전국 3대 장터 중 한 곳이었던 대구장(大丘場 : 현 서문시장)이 있었으며, 짐을 실어 나르는 마차가 많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의 매매(賣買)도 점차 성행하게 되어 이를 주목적으로 하는 말전골목이 만들어졌고, 마부(馬夫)들은 요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성로 골목에 있는 식당을 주로 이용하였습니다.


일제시대 대구장(大丘場)


이 때 마부들은 저렴한 돼지고기를 즐겨먹었으며, 그러다보니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이 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940년대 들어선 “서성옥”이라는 돼지국밥집이 대구 돼지국밥의 시초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마부들 대신 택시기사들이 돼지국밥을 즐겨찾게 되면서 서성로에 돼지고기골목 또는 돼지골목이라 불리는 거리가 형성되었습니다.


서성로 돼지골목


대구 돼지국밥은 돼지머리를 주로 사용한 육수에 내장과 같은 부속 부위를 다양하게 고명으로 넣고, 고춧가루와 된장 등이 섞인 양념장을 미리 국밥에 올려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구 돼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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