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정육상식

마포 돼지갈비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오늘도힘차게 2019. 11. 27. 10:56
728x90
마포 돼지갈비의 유래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마포(麻浦)삼남지방(三南地方 : 충청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함께 지칭하는 명칭)에서 오는 곡식을 풀어내려 저장하고, 황해에서 어획되는 새우·조기 등의 수산물을 풀어놓던 곳으로 농수산물의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였던 포구(浦口)였습니다.


1940년대 마포나루


하지만, 광복 이후 그 기능이 약화되다가 한국전쟁 이후 한강 하구의 수운이 휴전선에 의하여 폐쇄됨에 따라 포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주로 영세민의 주거지로 쇠락하게 되었습니다.


1962년대 마포구 염리동 천막촌


이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급격하게 인구가 팽창하게 되면서 마포에는 무허가 주택들이 난립하게 되었고, 만리동 고개에는 미군병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술집들과 식당들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만리동고개


당시 만리동 고개에 들어선 식당들 중 “유대포갈비”와 “광천갈비”에서 돼지갈비를 팔고 있었으나, 돼지고기 요리는 수육이나 찜 정도로 생각하였던 식문화에 비춰 매우 낯선 요리였기 때문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6년 故 최한채 씨가 소갈비구이에 착안하여 미군들이 버린 석유 보관용 드럼통에 연탄불을 올리고 소갈비구이보다 저렴한 돼지갈비구이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故 최한채 씨


다만, 돼지갈비구이는 안주로 원가에 팔고 막걸리를 큰 사발에 떠서 팔아 이윤을 남겼습니다.



대포집은 큰 대(大)에 바가지 포(匏), 즉 큰 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안주없이 먹는 술집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주인의 성씨 뒤에 ‘대포’란 말을 붙여 식당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으므로 故 최한채 씨의 최를 따라 “최대포집”이라 하였습니다.


최대포집


소갈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맛까지 있었던 돼지갈비구이는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였고, 주변에 고깃집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게 되면서 지금의 마포 돼지갈비골목이 형성되었습니다.


1985년 마포 주물럭 골목


추천과 댓글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