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정육상식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중세시대)

오늘도힘차게 2016. 6. 1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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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중세시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금지하는 교리에 따라 도축기술은 점점 쇠퇴하게 되어 탕박도 아닌 박피도 아닌 방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1123년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의 한 사람이였던 서긍이 고려(高麗)에 1개월간 머물면서 송나라와 다른 점을 저술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이 아니면 양과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에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이르러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죽인 뒤에 배를 갈라 장위를 다 끊고 똥과 더러운 것을 씻어 낸다. 비록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 졸렬함이 이와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도경

 

가축을 산 채로 불속에 넣었으니 육질은 당연히 좋을리 없었을 것이고, 가죽에 있는 털 또한 제대로 제거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털의 구조

 

표피층에 있는 털은 불로 태워 제거할 수 있었겠지만, 진피층 깊숙히 자리한 모근까지 제대로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려의 숭불사조(崇佛思潮)로 인하여 쇠퇴된 도축기술은 고려 후기 몽골의 침입으로 반전을 맞게 되었습니다.


몽골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고원에 위치하여 몽골인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는 육류였습니다.

 

고려는 약 30년간 세계에서 가장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민족 중의 하나인 몽골인에 대항하였으나 결국 고종 46년(1259)에 항복하고 맙니다.

 

여몽전쟁


이후 몽골인의 영향으로 고려는 육식을 기피하는 문화에서 탈피하게 되어 도축기술도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돼지는 노동력을 이용할 수도 없고, 크기도 작았으므로 식량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잡식성인 돼지를 식용으로 사육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돼지는 종묘(宗廟)와 사직(社稷) 등의 제사와 사신(使臣) 접대에 한하여 사용되었으며, 서민들은 접하기 힘든 식재료중의 하나였으므로 돼지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제1편 탕박의 개요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7
제2편 돼지 탕박의 현황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8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고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9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세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1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2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현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3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의 종류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6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장단점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7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비율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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