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정육상식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고대시대)

오늘도힘차게 2016. 6. 1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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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고대시대)

 

 

2015년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의 약 98%는 탕박방식에 의하여 털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탕박방식의 비율이 꾸준하게 증가한 결과로서, 우리나라는 돼지의 털을 모두 탕박방식에 의하여 제거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탕박과 박피의 비율

 

그럼, 과거에는 돼지의 털을 어떻게 제거하였을까요?

 

사실 이에 대한 문헌들은 그리 많지 않으나, 탕박방식보다는 박피방식이 선호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품종인 재래돼지(Korean Native Pig)는 약 2,000년전 만주지역에서 서식하던 소형종 돼지가 한민족과 함께 한반도에 유입된 이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는 고유한 형태를 계속 유지하여 왔습니다.

 

조선시대 재래돼지 풍속화

 

우리가 돼지를 떠올렸을 때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돼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죠?

 

재래돼지의 특징들이 기록된 조선농업년감, 조선농업편람 및 조선농업론 등의 과거 문헌들을 종합하면 “재래돼지는 피모가 흑색으로 체격은 왜소하고 체중은 22.5~32.5kg이며, 머리는 길고 뾰족하며, 배는 심히 하수되어 있고, 만숙에다 비만성이 없으나 체질은 강건하고, 번식력도 양호하며, 특히 육미는 조선 사람들의 입맛에 적합한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농업론

 

이런 내용들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고유품종인 재래돼지는 몸 전체가 검은 색이었고, 털은 여타 다른 돼지의 품종보다 굵고 깊게 박혀 있는 조강모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재래돼지의 털은 탕박방식으로 제거하는 것보다는 박피방식으로 제거하는 것이 피혁제품의 활용면에서도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644년에 편찬된 진(晉)나라 역사책인 진서(晉書)에는 부여(夫餘)에서 사육되던 재래돼지와 관련하여 “이 나라에는 소와 양은 없고 돼지를 많이 길러서, 그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며 털은 짜서 포(布)를 만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서

 

즉, 부여에서는 재래돼지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가죽과 털을 활용하기 위하여 가죽을 벗겨 털을 제거하는 박피를 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김육불(金毓黻)이 쓴 발해에 관한 역사서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에 따르면 738년 발해가 당나라에 돼지가죽 1000장을 수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발해국지장편

 

이런 사실들을 볼 때 고대시대에는 재래돼지의 가죽과 털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탕박방식보다는 박피방식에 의하여 도축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제1편 탕박의 개요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7
제2편 돼지 탕박의 현황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8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중세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0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세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1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2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현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3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의 종류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6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장단점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7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비율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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