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분할 15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7편 현대시대-2)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7편 현대시대-2) 전후 피해가 어느 정도 복구된 뒤, 사회가 점차 안정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되어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소의 각 부위를 구분하는 기준과 방언 등에 의하여 의사소통의 혼란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0년대 인구 이동 거기다 유통업체 등은 수익율을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기존의 소 부위를 더 세분화한 뒤 국어사전에도 없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한정된 물량만이 나오는 부위라며 가격을 더 비싸게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소의 각 부위별 명칭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또한, 각 부위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라 혼동과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7편 현대시대-1)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7편 현대시대-1)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조선의 소는 일본의 군수물자조달을 위한 수탈로 급격하게 숫자가 감소하게 되었으며, 1939년에 발생한 대흉작 등으로 극도의 식량부족현상이 나타나게 되자 고기값과 내장 등의 부속물 가격이 폭등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축산물의 수급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안정을 위하여 물가를 통제하였으며, 역용종(役用種) 소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계속 소를 도축하자 축우도살제한법(畜牛屠殺制限法) 등을 공포하여 소의 도축을 금지하기도 하였습니다. 1949년 3월 6일 동아일보 축우도살제한법 하지만, 정부의 이런 시책에도 불구하고 매우 열악하였던 식량수급사정상 고기값은 잡히지 않았고, 소고기의 수급은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6편 근대시대-2)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6편 근대시대-2) 조선이 격동기를 겪고 있는 동안 일찍이 서구문물을 수용하였던 일본은 열강의 제국주의에 편승하여 1876년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을 시작으로 1905년에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침탈한 후 1910년 한일병합조약(韓日合倂条約)까지 체결하여 결국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일병합조약 전권위임장 근대화 과정에서 이룩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조선을 식민지화시킨 일본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설치하여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군사권을 장악하고, 한반도를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각종 탄압과 수탈을 자행하였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이 과정에서 조선은 일본에 ..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6편 근대시대-1)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6편 근대시대-1) 소고기의 최대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소는 더 많은 부위로 세분화되었고, 그 부위에 맞도록 개발된 조리방법은 오늘날의 음식문화에도 대부분 계승될 정도로 발전되었습니다. 따라서, 소의 부위별 명칭과 조리방법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근간을 두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홍도(金弘道)의 설후야연(雪後野宴) 하지만, 소를 다양한 부위로 나눌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백정을 천시하여 이들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제도나 교육기관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부위에 대한 지식과 발골기술 등은 구전(口傳)으로 전래(傳來)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의 각 부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기도 힘들었으므로 누가, 누구에..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5편 근세시대-2)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5편 근세시대-2) 조선시대에 이르러 소를 다양한 부위로 세분화하고, 부위별로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은 재인(才人), 화척(禾尺), 신백정(新白丁), 거골장(去骨匠)으로 불렸던 백정도 큰 몫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백정 고려시대에서는 나름 전문가로 대접받았던 이들이 농본주의를 천명한 조선시대에서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농사에 핵심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를 도축한다는 이유로 매우 천시되었으나, 조선에 불어닥친 소고기 열풍속에서 소의 도축을 담당할 수 있는 건 결국 이들 밖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수많은 소의 도축경험을 통하여 도축지식과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발전된 기술은 반촌(泮村) 등에서 모여 살면서 다른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더욱 진보..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5편 근세시대-1)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5편 근세시대-1) 고려 후기,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등장한 친몽골 성향의 권문세족(權門世族)은 음서제도(蔭敍制度)를 통하여 신분을 세습하고, 대토지를 겸병(兼幷)하면서 농민들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는 등 그 횡포가 극에 달하였고, 불교의 세속화에 따른 폐단과 북으로는 홍건적, 남으로는 왜구의 침입으로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권문세족(權門世族) 이에 당시 최고의 무장이었던 이성계(李成桂)는 권문세족과 불교 세력의 비리를 비판하였던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후 유교(儒敎)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하고, 숭유억불(崇儒抑佛)과 숭농억상(崇農抑商)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성계(李成桂) 또한, 권문세족의 과도한 수탈로 인한 농민의 생산의욕 위축과 그..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중세시대-2)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중세시대-2) 몽골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유목민족으로서, 13세기 초 테무진(鐵木眞)이 주변의 부족을 평정한 이후 주변국으로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고려도 전쟁에 휩쓸리게 되었습니다. 고려는 약 30년간 몽골에 대항하였으나, 여몽전쟁(麗蒙戰爭)에 패한 후 몽골과 결혼동맹(結婚同盟)을 맺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왕실을 비롯한 관료 등 수많은 몽골인이 약 150여년간 고려에 머물거나 교류하게 되면서 몽골의 육식문화는 자연스럽게 지배층을 중심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여몽전쟁(麗蒙戰爭) 특히, 불교의 교리 및 권농정책(勸農政策)에 따른 농우(農牛)의 도살금지령으로 접하기 힘들었던 소고기가 육식의 주재료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선 ..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중세시대-1)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중세시대-1) 삼국시대 후기에 이르러 고대국가들의 영토가 점점 확장됨에 따라 기존의 토속신앙을 억압하는 동시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고구려 장천1호 예불도(禮佛圖) 즉, 불교의 업사상과 윤회사상을 왕권에 적용하여 왕의 권위를 세우는 동시에 백성들의 사상적 통일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샤머니즘 영향력의 약화와 통구이 조리법의 번거로움을 이유로 소를 통째로 조리하는 방법은 점차 사라지게 되어 중국과 유사하게 대부위별로 조리하게 되었습니다. 즉, 통구이형식의 조리법은 겉과 속을 골고루 익히기 매우 까다롭고, 오랜 시간 조리하여야 하므로 많은 연료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고, 샤머니즘의 영향력이 강..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고대시대)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고대시대) 대형동물의 사냥기술을 습득한 인류에게 오록스는 매우 좋은 수렵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록스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였기 때문에 행여라도 고기가 남게 되면 저장기술이 없었으므로 고기는 금새 변질되었고, 변질된 고기는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인류는 자연상태에서 고기가 장기 보존될 수 없다는 지식을 습득하게 되어 오록스를 덫이나 함정 등을 이용하여 산채로 포획하였다가 필요한 때에 도축하는 방법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방치된 오록스는 도축되기 전에 굶주려 죽거나 다른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었기 때문에 도축할 때까지 생존시키기 위하여 먹이를 주고, 다른 육식동물로부터 보호를 하면서 원시적 형태의 목축이 시작되었습니다. 목..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2편 선사시대)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2편 선사시대) 한반도에 인류가 유입되기 이전인 약 200만년 전, 현재 축우의 직계조상인 오록스(Aurochs; Bos primigenius)는 전세계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중국북부와 만주를 경유하여 한반도에도 유입되었습니다. 오록스(Aurochs) 이후 약 70만년 전쯤 한반도에 인류가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먹거리가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채집으로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였고, 다른 동물이 죽인 동물의 사체 또는 자연적으로 죽은 동물의 사체 또는 비교적 사냥이 수월한 중・소형동물의 사냥을 통하여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소형동물의 사냥은 많은 양의 고기를 획득할 수 없었으므로 매번 사냥을 하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1편 소고기 분할의 개요)

소고기 분할의 한국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1편 소고기 분할의 개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소 한 마리에서 100가지 맛이 난다는 뜻으로 '일두백미(一頭百味)'라 표현하였고, 고기와 머리, 내장 등을 포함하여 최대 120가지로 세밀하게 나누어 다양한 음식재료로 활용하여 왔습니다. 이에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영국, 프랑스는 소를 35부위로, 동아프리카 보디족은 51부위로 나누어 먹는데, 한국은 무려 120부위로 나누어 먹는다”며 감탄하기도 하였습니다.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아래 단어들이 국어사전에 등록된 소고기 부위 중 일부를 열거한 것으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등심, 안심, 갈비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부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

소고기 설도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1편 설도의 기초)

소고기 설도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제1편 설도의 기초 소의 설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설도는 소의 뒷다리의 엉치뼈(관골), 넓적다리뼈(대퇴골)에서 우둔부위를 제외한 부위이며, 중간둔부근(중둔근), 표층둔부근(천둔근), 대퇴두갈래근(대퇴이두근), 대퇴네갈래근(대퇴사두근) 등으로 구성된 부위를 말합니다. 설도는 왜 설도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설도는 새다, 싸다를 의미하는 설(泄)과 길을 의미하는 도(道)의 한자어로서, "싸는 길"을 의미합니다. 싸는 길? 뭘 싸는 길일까요? 예상한 것처럼 배설통로를 의미하는 것이 맞습니다. 설(泄)자가 들어가는 용어로는 배설(排泄)과 설사(泄瀉) 등이 있습니다. 예전엔 설도를 '구녕살, 밑살' 또는 '비역살'이라고 하였으나, 배설기관을 연상하게 되므로 식용으로 하는 ..

소고기 앞다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2편 앞다리의 발골 및 정형)

소고기 앞다리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제2편 앞다리의 발골 및 정형 지난 번에 소고기 앞다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떤 성분 등이 있는지 기본적인 내용을 알려드렸으니 이번엔 어떻게 앞다리가 생산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다리는 어떻게 발골과 정형을 하게 될까요? 앞다리의 정형기준에 대하여는 농림부고시 “식육의 부위별·등급별 및 종류별 구분방법”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다리의 분할정형기준 우선 앞다리의 위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반도체 내측 반도체 외측 소 한 마리를 미추, 천추, 요추, 흉추 및 경추 중앙선을 따라 좌우로 균등하게 절단하여 2분도체로 나눴을 때 앞다리는 위와 같은 부위에 위치하게 됩니다. 2분도체에서 제13흉추와 제1요추 사이에서 2분체 분할 정중선..

수입육 등급표시에 관한 질의

수입육 등급표시에 관한 질의 【제 목】 : 수입육 등급표시에 관한 질의 【사건번호】 : 질의답변(2000.10.20) 【질 의】 수입육 전문 판매점에서 진열 판매시 표시사항중 등급란에 등급의 표기가 의무사항 인지와 도매로 판매시 판매 거래 명세표에 등급 표시를 하여야 하는지? 【회 신】 ◦ 축산물가공처리법시행규칙 제51조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고시된 "식육의 부위별, 등급별 및쇠고기 종류별 구분방법(농림부고시제1999-66호,'99.9.28)"은 국내산 식육에 대해 식육판매업자가 준수하여야 할 사항을 세부적으로 정한 것으로서 수입육에 대하여는 적용이 아니됨. ◦ 농수산물품질관리법, 대외무역법, 축산법등 관련법에서 정한 원산지 표시 등은 관계법령에서 정한대로 하여야 함. ◦ 참고로 국내산 식육을 판매 할때..

돈육의 판매구분에 관한 질의

돈육의 판매구분에 관한 질의 【제 목】 : 돈육의 판매구분에 관한 질의 【사건번호】 : 질의답변(’2001.3.18) 【질 의】 돈육 판매시 삼겹, 목살, 등심, 안심 등 하나의 부위만으로 구분하지 않고 등삼겹, 목전지로 두 부위를 같이 붙여 판매하는 것이 규정에 위반되는 것인지? 가격표나 라벨에 등삼겹, 목전지라 명확히 명시를 해서 판매하는 것은 가능한지? 정육점에서 트레이에 고기와 일정량의 야채를 같이 포장하여 판매할 수 있는지? 또, 고기와 일정량의 별도 양념을 같이 포장하여 판매해도 되는지? 【회 신】 ◦ 과거에는 지역마다 축산물의 분할정형방법이 상이하여 식육거래의 공정성 확보가 어려웠으며, 이에 따라 91년부터 전국적으로 통일된 축산물 분할정형기준을 마련하여 부위별 가격차등화로 식육유통질서확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