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박(湯剝 9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비율)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비율) 2011년 5월을 기준으로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전체 77개의 도축장 중 탕침식 탕박을 적용하는 곳은 51개소이고, 열수샤워식 탕박은 20개소, 스팀응축식 탕박은 6개소로서, 돼지의 탕박방법은 대부분 탕침식 탕박에 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분 도축장 업체수 비율 스팀응축식 6 7.8 열수샤워식 20 26.0 탕 침 식 51 66.2 전체(계) 77 100 제1편 탕박의 개요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7 제2편 돼지 탕박의 현황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8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고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장단점)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장단점) 탕침식 탕박은 탕박효과가 매우 우수하고, 탕박 후 탈모가 용이하며, 초기 시설자금이 저렴하고 유지보수가 용이한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오염된 탕박수에 의하여 돼지의 표면이 오염될 위험성이 있고, 도축라인이 중단되는 경우에는 침지된 돼지의 과탕박이 발생할 수 있으며, 탕박수 및 폐수처리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스팀응축식 탕박은 탕박수를 순환하지 않아 돼지의 표면이 오염될 위험성이 적고, 도축라인이 중단되는 경우에도 과탕박의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으며, 폐수처리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초기 시설자금이 상당히 소요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제1편 탕박의 개요 바로가기 : http:..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의 종류)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의 종류) 돼지의 가죽에 있는 털은 거칠고 뻣뻣하여 식용으로 이용할 수 없으므로 도축과정에서 제거되어 폐기되거나 다양한 제품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돼지의 가죽에 있는 털은 단단하게 박혀 있으므로 그냥 뽑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며, 가죽에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돼지털 따라서, 탈모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털이 박혀 있는 모공 부위를 이완시켜 줄 필요성이 있으며, 뜨거운 물을 이용하여 모공을 이완시키는 것을 탕박과정이라고 합니다. 즉, 탕박은 돼지가죽에 적절한 열기를 가하는 것으로서, 열기를 가하는 유형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1) 탕침식 탕박 탕침식 탕박 탕침식 탕박은 탕침조(scalding tank)..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현대시대)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현대시대) 1945년 광복 이후 군정과 정부 수립과정을 거치면서 버크셔종, 햄프셔종, 랜드레이스종 등의 외래종이 다수 유입되어 그 수는 점점 증가하였으나, 재래돼지는 성장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농가 선호도가 낮아 점점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양돈사업으로 1945년에 195,291마리였던 돼지는 1949년 525,028마리로 일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지만, 일본의 수탈과 광복 이후의 혼란으로 피폐해진 축산업이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6.25전쟁이 발생되어 국민들은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에 돼지의 가죽은 피혁제품으로의 활용보다는 먹거리로 활용될 수 밖에 없었으므로 돼지는 털만 제거하고 가죽은 먹는 ..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대시대)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대시대) 조선시대까지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던 재래돼지는 일제강점기에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일본은 조선에서 전쟁을 위한 수탈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조선의 전통 및 자연환경에 따른 자원을 보전시키기 보다는 일본식 체계를 강압적으로 보급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1906년 권업모범장이라는 기구를 설치하였습니다. 권업모범장 권업모범장은 이름 그대로 일본식 기술이 모범이라는 것이며, 수탈의 대상에는 가축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당시 권업모범장이 조사한 권업모범장 성적요람 등에 따르면 조선의 가축 중에서 우등한 것은 한우 하나였으며, 재래돼지는 개량의 대상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즉, 권업모범장에서 발간한 자료인 성적요람 의하면 한우는 “일본..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세시대)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세시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재래돼지의 털을 다양하게 제거하였음을 알 수 있는 문헌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1459년 8월 28일자 세조실록에 의하면 “돼지가죽 1장은 베 10필의 가격인데, 이를 가공한 가죽 갑옷은 베 50필에 달한다고 할 정도였다”라고 기록되어 피혁제품의 생산을 위하여 돼지의 털을 박피방법으로 제거하였음을 알 수 있고, 세조실록 1924년 위관 이용기가 지은 한국음식 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의 "아저찜(兒猪蒸 : 새끼 돼지찜)"과 실학자 홍만선이 엮은 가정생활서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자아저방(炙兒猪方 : 새끼 돼지구이)"을 만드는 방법과 관련하여 “어린 돼지를 뜨거운 물에 담가 ..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중세시대)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중세시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금지하는 교리에 따라 도축기술은 점점 쇠퇴하게 되어 탕박도 아닌 박피도 아닌 방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1123년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의 한 사람이였던 서긍이 고려(高麗)에 1개월간 머물면서 송나라와 다른 점을 저술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이 아니면 양과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에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이르러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고대시대)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고대시대) 2015년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의 약 98%는 탕박방식에 의하여 털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탕박방식의 비율이 꾸준하게 증가한 결과로서, 우리나라는 돼지의 털을 모두 탕박방식에 의하여 제거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탕박과 박피의 비율 그럼, 과거에는 돼지의 털을 어떻게 제거하였을까요? 사실 이에 대한 문헌들은 그리 많지 않으나, 탕박방식보다는 박피방식이 선호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품종인 재래돼지(Korean Native Pig)는 약 2,000년전 만주지역에서 서식하던 소형종 돼지가 한민족과 함께 한반도에 유입된 이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는 고유한 형..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2편 돼지 탕박의 현황)

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2편 돼지 탕박의 현황) 돼지는 멧돼지과에 속하는 잡식성 포유동물로서, 가죽은 두꺼우나 강도가 약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돼지의 가죽을 식용으로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돼지껍데기 구이 그러나, 돼지의 가죽에 있는 털은 거칠고 뻣뻣하여 식용으로 이용할 수 없으므로 도축과정에서 제거하게 되며, 털을 제거하는 방식은 가죽 자체를 벗겨내는 박피방식과 뜨거운 물에 담근 후 털을 제거하는 탕박방식으로 구분됩니다. 돼지털 즉, 돼지의 가죽은 피혁제품이나 식용으로 모두 사용할 수 있으므로 털을 제거하는 방식 또한 박피방식과 탕박방식을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에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 가축의 도살·처리 및 집유의 기준에서는 “가축의 껍질과 털은 해당 가축의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