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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대시대)

오늘도힘차게 2016. 6. 15.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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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박(湯剝, scalding)에 대하여 알아봅시다..(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대시대)

 

 

조선시대까지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던 재래돼지는 일제강점기에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일본은 조선에서 전쟁을 위한 수탈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조선의 전통 및 자연환경에 따른 자원을 보전시키기 보다는 일본식 체계를 강압적으로 보급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1906년 권업모범장이라는 기구를 설치하였습니다.

 

권업모범장

 

권업모범장은 이름 그대로 일본식 기술이 모범이라는 것이며, 수탈의 대상에는 가축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당시 권업모범장이 조사한 권업모범장 성적요람 등에 따르면 조선의 가축 중에서 우등한 것은 한우 하나였으며, 재래돼지는 개량의 대상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즉, 권업모범장에서 발간한 자료인 성적요람 의하면 한우는 “일본 재래종에 비해 골격이 크면서 온순하고 영리해 일소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거친 사료도 잘 먹고 환경 적응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라고 하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150만 마리의 한우를 수탈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재래돼지는 “조선의 재래돈은 체질이 강건하고 번식력이 강하다. 체격은 극히 왜소하여 6~7관(22.5~26.25kg)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성숙이 늦고 비만성이 결핍하여 경제가치돈 중 최열등하여 이를 개량하는 것이 극히 긴요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업모범장 성적요람


즉, 전쟁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목적에 비추어 재래돼지는 체구가 너무 작고, 성장속도가 매우 느려 부적합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은 소형종이었던 재래돼지의 생산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미명하에 일제강점기 기간동안 재래돼지와 외래종인 버크셔종과 요크셔종을 무분별하게 교배시켜 재래돼지는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6·25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거의 멸종하게 됩니다.


물론 일본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돼지의 가죽 또한 전쟁물자의 조달을 위하여 수탈하여 갔습니다.
 

일제시대 양 수탈 모습

 

제1편 탕박의 개요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7
제2편 돼지 탕박의 현황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8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고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19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중세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0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근세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1
제3편 돼지 탕박의 역사-현대시대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3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의 종류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6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장단점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7
제4편 돼지 탕박의 방법-탕박방법의 비율 바로가기 : http://themeat.tistory.com/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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